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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coding) 그리고 시그널(signal)
작성자 : 애플망고()   작성일 : 18.02.02   조회수 :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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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coding) 그리고 시그널(signal)

 

 

  지금부터 저만의 코딩과 시그널에 대해 풀어 보려 합니다. 상담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것은 바로 코딩과 시그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코딩이라 함은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저의 삶을 또 다른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그널은 삶, 살아있지만 그것이 값진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핵심 요소입니다.

 

  선생님과 60주 가까이를 만나며 많은 이야기를 토해내었습니다. 어느 순간 제가 느끼기에 선생님은 저의 입을 통해 내뱉는 말보다는 제 안의 진짜가 표현하고자 하는 시그널을 찾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고 느꼈습니다. 저 또한 저 스스로가 그 시그널을 발견하고 찾아냈을 때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느끼며 살아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경험했고 나에게 이런 힘이 있는데 왜 포기하는 마음으로 허덕이며 살았을까 정말 소중한 경험들을 하고 있구나. 비록 인간이 세운 교회는 불신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지만 신은 있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시간들이 주어질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말로<몸동작으로<눈빛으로<감정으로 수많은 방법으로 나를 표현해내는 것 그것이 시그널입니다. 그것을 억누를 때 나의 시그널은 비틀어져 표현되어지고 그것이 나에게로 향했을 때는 나를 다치게, 타인을 향했을 때는 타인을 다치게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선생님은 내 안에 있는 나를 의식하고 찾아보며 분출되는 에너지(감정)를 읽어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밖으로 표출해낼 때 또는 누군가에게 정확히 전달되어져 공유 될 때, 가슴 가득 차오르는 만족감을 여러 번 경험하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에너지 또는 감정 이것을 저만의 표현으로 시그널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 스스로가 뿜어내는 시그널(알아차림)        - 타인에게 보내는 시그널

- 타인이 나에게 보내는 시그널                   - 서로의 시그널 (알아차림)

 

  저는 수많은 말들과 글들을 주고받지만 마음 깊숙이 숨겨 있는 내면의 에너지가 보내는 시그널을 읽어낸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까지는 상담을 통해 제가 발견한 시그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더 자질구레한 생각들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머릿속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생각들이 저만의 알고리즘으로 통합되어 정리되려면 많은 자질구레함이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어려서 산만한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이야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아이 때는 몸으로 뛰어 정보를 알아내지 않았겠습니까.

 

? 자질구레한 생각 1.

 

  광대한 우주 속 점으로라도 보이지 않을 이지만 우주 또한 내가 있기에 존재함을 생각하며, 실존하는 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나를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보다, 내 삶을 지탱하는데 절실히 필요한 남편보다, 나의 피와 살을 나누고 생명(창조, 존재)의 신비함을 증명해주는 자식들보다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사느냐가 중요해졌다. 지금의 나는 내가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나의 삶을 충만하게 살기 위해 부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마음을 버린다. 자식을 잘 키워보겠다는 헛된 욕심도 버린다. 그런 것은 없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고속도로의 차선과 같다. 1차선과 2차선 또는 6차선, 8차선 어떤 차선이 되든지 각자의 차선을 달리고 있을 뿐이다. 신호 없이 차선을 벗어나거나 과속주행을 한다면 결과는 당연 충돌과 사고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주행하는데 있어 앞지르도록 차선을 내어 줄 수도 있고 과속을 막기 위해 클랙숀을 울려줄 수는 있어도 그 차선을 넘어 부딪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각자의 삶인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차선을 지키며 함께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시그널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나는 상담을 통해 내 안의 에너지(감정)를 분출하는 역동적인 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표현해낼 때 충만감을 느꼈다고 했다. 또 이를 기쁨이든 분노든 누군가에 의해서 발생되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상대방이든 대체재든 그것이 전달되어질 때도 만족감을 느낀다. 이 경우 말고 한 가지가 더 있다. 내가 상담을 종료하지 못하고 지속하려했던 것이 바로 이것을 찾기 위해서였던 같다.

 

  최근에, 결혼 초부터 망각하려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던 남편에 대한 싫은 감정들이 쏟아져나오는 일이 있었다. 마음 어디선가 그런 생각을 버리라고 한다. 나의 생존에 위험한 일이란다. 그 마음을 키우면 남편이 싫어져서 같이 살기 힘들어진단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 잊어버리고 다른 생각들로 채워 넣으란다. 이건 회피다. 직면을 통해서 그것을 해결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상담을 통해 남편에 대한 마음들을 분석해보려했다. 드러내고 토해내는 작업들을 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내 방식대로 해답을 찾아버린 것 같다.

 

? 자질구레한 이야기 2.

 

  주말에 준희라는 친구가 운영하는 빵가게를 방문하게 되었다. 준희는 16년 전 결혼 예물을 준비하다 소개로 알게 된 친구의 친구였고 그래서 이어진 관계였는데 10년 전 소식이 끊겼었다. 그러다 소개를 해줬던 친구의 죽음으로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준희는 나에게 굉장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나는 섭섭한 마음이 없는데... 아무래도 그녀의 결혼식과 아이의 돌잔치에 초대장을 받지 못했음에도 축의금을 챙겨줬던 나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나보다. 사실 초대장을 받았어도 가지 못했을 것 같은데...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대전까지 갈 정도로 친하다고는 생각 안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답례 전화는 받았던 것 같은데.... 그때도 미안하다 그러더니 여전히 미안하다고 한다.

 

  어쨌든 준희는 내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군자역에 있는 빵가게에 꼭 들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친구의 장례식장에서도 장례식이 끝난 이후에도 꼭 들려서 본인이 만든 빵을 먹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주말을 이용해 작은 아이와 예쁜 화분을 하나 준비해 약속장소로 갔다. 가게 찾기가 쉽지 않으니 지하철 안 어디 입구로 오라는 것이었다. 1시간 조금 더 걸리게 가는 시간 동안 친구와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며 도착했을 때, 아이와 나는 깜짝 놀랐다. 만나기로 한 장소가 친구의 빵집이었고 그 빵집은 흔히 상상하게 되는 테이블이 있는 카페식 빵집이 아니라 지하철문이 열리자마자 마딱드려 마구잡이로 골라 살 수 있는 좌판식 빵집이었다. 안에서는 친구와 제빵사가 쉴 새 없이 빵을 만들고 앞에 판매대에는 아주머니 두 분이 정신없이 빵을 담아주고 계셨다. 친구는 밀가루를 뒤집어 쓴 채로 뛰쳐나와 내게 줄 빵을 커다란 봉지로 세 봉지나 채워 내 손에 들려줬다. 그리고는 미안하다. 내가 차 마실 여유가 없다. 가지고 가서 애들이랑 먹어. 냉동실에 보관하면 며칠 먹을 수 있어. 여기 월세가 천 오백이야. 이제 더는 힘들어서 이번 달 안으로 정리하는데 그 전에 너 빵 먹이고 싶어서 오라한 거야. 나중에 정리 끝나면 연락할 께. 그 때 밥 한 번 먹자.” ,,, 이게 아닌데....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나는 생각이 참 짧다. 친구가 지하철에서 빵가게를 한다고 했을 때 알아들었어야 했는데..... 화분이 아니라 봉투를 준비해왔어야 하는 건데... 마음이 너무 무겁고 무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 그냥 바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왔다.

 

  내가 준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한 금은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보석감정사라고 소개 받았고 그녀의 결혼 후 소식은 종로에서 금은방을 시작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제빵사가 되었다는 최근 소식은 의외였다. 더구나 저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

 

  남편은 인권위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어서 경제력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었다. 지금은 그 마저도 안하고 있는 모양이다. 남편이 새벽 4시에 나와 빵을 굽다가 오후가 되면 준희하고 맞교대를 한다 했다.

 

? 자질구레한 이야기 3.

 

  큰 애가 세 살 무렵 어느 날 대전에 살던 준희한테 연락이 왔다. 본인이 살 방을 하나 알아봐 달라는 것이다. 엄마와 언니가 서울에 갈 텐데 그 방을 보여주고 계약할 수 있게 잘 말해 달란다. 나중에 준희와 어머니의 말을 종합해 보면 어머니 말씀으로는 어머니 삼십 대에 준희아버지께서 사고로 불구가 되셔서 자식 돌볼 틈 없이 억척스럽게 장사하고 살다보니 막내인 준희가 저리 생각없이 천방지축 살려고만 한다. 재산을 한 몫 떼서라도 시집은 제대로 된 곳으로 보내고 싶다,  준희의 얘기로는 엄마가 얼마나 사납고 억척스러웠는지 상처가 많단다. 이제서야 막내인 나라도 챙겨 보시겠다고 저렇게 극성을 떠시는 데 숨이 막히고 답답하다. 엄마한테서 벗어나고 싶다. 네가 아주 친한 친구고, 가까이 살며 나를 잘 챙겨줄 거라고 둘러댔다. 나의 독립을 도와달라였다. 결국 준희는 억지스럽게 독립에 성공했고 나의 도움이라고는 자취방을 알아봐 준 정도였다. 털털하고 선머슴 같은 노처녀 준희는 한 동네에서 2년이 조금 못되게 살았었던 것 같다.

 

  이후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고 결혼과 동시에 종로에 금은방을 냈으니 한 몫을 챙겨주시기는 했나보다 생각했지 이렇게 온 팔뚝에 화상자국이 있으리만큼 험한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 자질구레한 이야기 4.

 

  준희에게 다녀 온 뒤로 언제나처럼 갑툭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이런 저런 생각.

 

  순리대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내 타고난 성정대로 내 주어진 환경에 자연스럽게 어울려가며 무리하지 않게 지냈더라면 난 지금의 남편을 만나지 않았을 것 같다. 남편이 낯설고 싫어지는 때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면서 배어진 생각과 방식이 보여 질 때다. 많이 싫다. 말투도 싫다. 그것을 내 식대로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그것을 얘기한다고 바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사는 방식이 정답도 아니고 그가 사는 방식이 틀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다름이 받아들여지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을 뿐이다. 그것이 느껴질 때 화들짝 놀라고 싫어진다. 남편이 저속하고 싸구려 같다.

 

  춘화도 순리대로 살았다면 본인의 성정에 잘 어울릴만한 배우자를 만나 본인 하고 싶은 일 하며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또 다른 친구 윤희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이에 밀려 늦 결혼하는 그래서 평생 해보지도 않은 식당 주방 일을 그리 하지 않았다면 일산화탄소에 중독돼서 폐암에 걸리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순리는 어떤 것일까? 이치? 논리? 사고력?

 

  요즘 컴퓨터 교실에서는 대세가 코딩이다.

사고력, 창의력, 문제해결력을 위해 반드시 교육해야할 분야라며 교육부에서는 벌써 정규과목으로 배정한 상태이고 올 해부터 순차적으로 정규수업이 진행될 것이다.

 

  코딩은 프로그래밍의 다른 말이다. 어려운 컴퓨터 언어를 어린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단순 블럭화하여 제작된 프로그램이다. 논리에 맞게 블럭들을 순차적으로 조립만 하면 프로그래밍이 되는 소프트웨어로 이렇게 진행하는 수업을 코딩수업이라고 한다. 이 블럭들을 순차적으로 잘 배열만 한다면 상당한 수준의 게임을 어린 학생들도 너끈히 제작할 수 있다.

 

  코딩 수업으로 게임을 프로그래밍 할 때 순차적인 배열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게임은 실행되지 않고 학생은 반드시 그 오류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시간을 들여 오류를 찾아내는 것보다는 전체를 삭제하고 처음부터 다시 프로그래밍 하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숨어있는 오류를 찾아내는 것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의 상담도 일종의 오류 찾기 같다.

산다는 것도 무리하지 않고 어그러지지 않게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져야 큰 무리 없이 살아지는 것이 코딩과 같아 보인다. 갑툭튀처럼 엉뚱한 블록을 가져다 끼워 넣게 되면 코딩처럼 오류가 발생하게 되고, 결국 결과물은 엉뚱한 모양새로 나타나거나 아예 작동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삶은 처음부터 다시가 없다. 차근히 과정을 살펴 오류를 수정하든가 망가지든가 사망하든가......

 

  이렇든 나에게 있어서 상담은 삶의 오류를 수정하고 살아 온 과정을 차근히 되짚어보고 불필요한 블록들을 제거하고 꼭 필요한 블록들을 끼워 넣는 작업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뿐만 아니라, 생을 다할 때까지 최대한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순차적으로 순리대로 코딩을 해야 한다는 것도 배운 것 같다. 혹시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차근히 살피고 수정하면 된다는 것도.

 

  지금의 남편도 코딩 중 오류일 수 있다. 그 오류의 이름은 카르마. 법륜스님 말씀이 카르마는 업보란다. 이 업보는 누군가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닌 내가 만드는 것이란다. 준희가 지금 처한 상황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준희의 선택이 그리 만들어낸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코딩(산다는 것=) 중 생긴 오류라고 생각한다. 누굴 탓 하겠는가. 하지만 이 오류는 수정 가능하다. 남편은 한 개의 블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각 기능을 가진 여러 개의 블록들이 조립되어진 덩어리이다. 이중 한두 가지를 제거하고 다른 것을 끼워도 되고 몇 가지를 보강해 더 나은 기능을 할 수 있게, 또는 조금은 더디 작동되겠지만 돌아가는 방법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일부의 기능을 포기하는 방법도 있다.

 

  나는 지난 1년 여간 삶을 코딩하는 방법을 배웠다. 코딩은 수정의 연속이다. 수정은 하면 할수록 실력이 향상된다. 매일같이 학생들을 통해 보지 안는가, 실수를 많이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실수를 수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실패를 만든다. 거듭되는 실패와 수정을 통해 완성에 가까워지고 성공을 이루어낼 확률이 높아진다. 이렇게 생각들이 정리되어지니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시그널에 유능해 지는 것이다.

처음 밝혔듯이 내가 나의 시그널을 읽어내는 작업, 그리고 주의 깊게 타인에게 시그널을 보내는 방법, 더 나아가서는 타인의 시그널을 정확히 이해하고 서로의 시그널을 공유 할 수만 있다면 살아있다는 것이 그리고 산다는 것이 굉장한 경험이고, 행복 그 자체일 것 같다.

 

과연, 남편의 시그널을 내가 정확히 감지하고 읽어낼 수 있을까? 그 시그널을 해독하고 내 시그널을 그가 해독해낸다면 우린 삶의 동반자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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